필자는 명상하거나 기도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어쩌면 삶의 가장 큰 부분이고 자신을 지탱해 주는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오늘도 기도하고 명상에 잠기다 잡생각이 나서 눈을 뜨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변화” 때문이었다.
이 사회는 급변하고 있고 그 변화의 물결에 맞추어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사람들은 몸부림을 치는데, 변화의 물결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사람들은 적응하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변화가 빠르다고 하지만 그 빠른 변화에 사람들의 적응도 상당히 빠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응이 쉽게 안 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종교다. 특히 기독교의 빠른 변화, 아니 몰락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가 공식적으로 들어 온 것은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목사에 의해서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1882년에 있었던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되었기 때문인데, 공식적인 외교 통상 관계가 맺어졌으므로 두 목사는 공식적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당시 고종황제가 기독교를 정식으로 허용한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단지 선교사들이 의료와 교육 등의 형태로 활동하다가 활동 범위를 자연스럽게 넓히면서 개신교 선교가 본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못마땅했을 것은 당연하다. 주자학을 통치 이념의 근본으로 여겼던 조선이 유교의 큰 바탕 아래 주자학 즉 성리학을 앞에 내세워 모든 이념과 흐름이 이어져 내려왔다.
개신교의 종교적 형태의 활동은 단순한 포교를 넘어서 성리학적 이념에 반하며 사회질서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상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매우 난처했는데, 그런데도 모든 것을 받아들였던 이유는 서양식 선진 의료와 교육 그리고 과학기술이 당시 조선은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근슬쩍 받아들여진 개신교는 조선에 없던 현대식 병원을 세워 사람들을 치료했고, 학교를 건립하여 가르쳤으며 조선이 근대화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한 나라가 돌보지 못한 사회적 약자에게 도움을 주었기에 민중이 개신교에 빠르게 동화되었으며 그사이에 개신교는 굳건하게 자리 잡았고 복음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후 1907년에 평양 대부흥을 시작으로 개신교는 엄청난 세가 확장되고 일제강점기에는 기독교인과 교회가 민족운동에 동참하면서 매우 중요한 축을 담당했었고, 3.1운동을 하는 중심인물의 절반가량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중대한 일에는 기독교인이 빠지지 않았으며 그 영향력도 상당했고 드디어 해방을 맞이하게 된다.
해방 이후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주축이 되어 빠른 성장세를 보이다가 70년대에는 교회가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대형 교회로 발돋움하는데 그 대표적인 교회가 여의도순복음교회였다. 또한 70년대에서 80년 초까지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교회도 같이 성장하였고 한국에서 개신교는 손에 꼽는 메인 종교로 자리매김한다.
1990년대 개신교는 국내에서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해외로 선교사를 파견하며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전에도 선교사를 공식 파견한 적도 있고 일부 교단이나 단체 혹은 교회에서 선교사를 보내 활동했지만 극히 일부였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선교 활동은 1980년 후반부터 1990년 초반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개신교가 들어온 역사가 매우 짧은데도 빠른 성장과 부흥으로 인해서 해외로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가 되었고, 기독교인은 날로 증가했으며 거리에는 흔하게 전도지를 나눠주며 노방전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2000년 초반까지 계속됐고, 한국교회는 성장을 거듭했다.
개신교는 왜 쇠퇴하는가
교회가 많아지자 경쟁은 심했다. 단순한 교회 간의 경쟁도 경쟁이지만, 교단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현재는 200개가 넘는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또한 정식으로 인허가받지 않은, 즉 교육부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관련 대학이나 대학원 학과에서 공부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교육하고 목사를 양성하고 있어서 교육 기간이나 프로그램도 제각각이며 기간도 천차만별이다. 그로 인해 문제가 하나둘씩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교단은 이를 은폐하거나 목사 개인의 일탈 정도로 문제를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또한 헌금으로 인한 문제도 끊임없이 발생했으며 교회 내의 파벌도 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게다가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기독교인에 의한 대중의 신뢰는 완전하게 무너졌는데 확진자가 급속도로 퍼져 나가자, 정부는 방역 차원에서 거리두기를 시행했고 더 나아가서 집합 금지를 실행했는데 타 종교는 정부의 지시에 따르고 협조적이었다.
예를 들어 대한 불교 조계종 같은 경우에는 사회적 거리 2단계에 돌입하자 종교 행사 인원을 제한하거나 취소했고, 통도사는 증법회와 불교 의식(예불, 염불)을 전면 금지하고 예불문도 소리를 내지 않고 눈으로만 읽는 등 정부의 행정명령에 적극 협조했다.
천주교도 정부의 방역 관련 조치에 대해 매우 협조적이었다. 연중행사 중 사순절과 부활절을 방송으로 대신했으며 추기경이 직접 나서서 천주교회 전체가 정부의 방역에 적극 협조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원불교도 코로나 대책 위원회를 결성하여 교단 내 모든 법회를 중단하고 행사를 취소 또는 연기하였고 방역용품 및 코로나 확산 예방에 관한 성금을 모금하여 정부에 전달하는 등 종교단체로서의 모범을 보였고, 대순진리회도 참배와 교화, 치성 기도 등 모든 집회를 전면 금지하며 정부의 방역에 적극 협조했다.
하지만 개신교는 달랐다
물론 개신교도 순응하는 교단도 있었지만, 반대로 집합 금지는 “종교 탄압”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하며 피켓을 들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행정 명령을 따르지 않은 교회도 많았다. 그 결과 천안의 한 교회는 대면 예배 후 다 같이 모여 김치를 담는 등 공동 모임을 강행해서 231명이 집단 감염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서울의 한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대면 예배를 진행하여 약 1,000명이 넘는 신자가 감염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로써 개신교에 대한 대중들의 비판은 거세졌고, 신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렇다고 해서 코로나 사태 하나만으로 개신교가 침체의 늪에 빠지고 지금의 지경까지 왔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개신교는 그 전부터 여러 가지가 문제가 복합적으로 맞물려서 곯아 있다가 터진 것이다. 게다가 예전보다 삶이 풍요로워져서 간절함이 사라진 것도 큰 원인 중의 하나일 수 있다.
즉 어렵고 못 살 때는 뭔가에 기대어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는 것이 있었지만 삶이 윤택해지고 나서는 간절함도 사라지고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도 없어졌으며 가난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집념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풍요 속에서 오는 나태함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그렇게 신자들은 하나둘씩 교회를 떠났고, 젊은이들은 종교에 관심이 없으며 신의 존재를 믿지도 않는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야 빈자리가 채워질 텐데, 나가는 사람만 있고 들어오는 사람이 없으니, 교회는 재정적으로 허덕일 수밖에 없으며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교회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현재 상황을 이겨내고 다시 부흥을 맞이 하는 것은 힘을 것 같다.
이광희 칼럼니스트 기자 yoshinkan_kr@naver.com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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