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뒤 예산으로 오늘을 싸우라는 정부… K-배터리, 로드맵 다시 짜라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26-10-23 20:34:58 댓글 0
나트륨 배터리 예산의 늑장 편성 문제를 꼬집으며 전면 재점검의 필요성을 강하게 촉구
[데일리환경=이정윤,안상석 기자]“중국과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22일 열린 산업통상자원부 종합감사에서 나온 주무부처 수장의 입에서 마침내 솔직한 자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위기를 시인하는 속도에 비해 현장에 적용되는 정부의
 
정책 시계는 여전히 과거에 멈춰 서 있다.

배터리 시장의 판도는 이미 삼원계(NCM) 중심의 ‘성능 경쟁’에서 가격과 안전성을 앞세운 ‘가성비·보급형 경쟁’으로 급변했다.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 3사의 점유율은 30%대 중반으로 곤두박질친 반면, 중국 기업들은 40%를 넘기며 안방 밖에서도 K-배터리를 밀어냈다.

올해 1분기 기준 글로벌 1위 CATL 한 곳의 점유율(34%)이 국내 3사 합산(28.6%)을 압도했다는 수치는 위기가 이미 현실화했음을 뼈아프게 보여준다.

더 심각한 것은 연구개발(R&D)의 체급과 속도 차이다. CATL 한 곳이 올해 상반기에만 쏟아부은 R&D 비용(약 1조 9,500억 원)은 한국 배터리 3사의 R&D 투자 총액을 훌쩍 뛰어넘었다.

자금력과 스케일로 밀어붙이는 중국에 맞서야 할 국내 소부장 생태계는 매출 붕괴와 적자의 늪에 빠졌다. 분석 대상 중견·중소 상장사의 59%가 영업적자를 기록하며 기초체력마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이날 국정감사장에서 매서운 비판을 쏟아낸 장철민 의원(사진)의 진단은 현장의 위기감을 정확히 관통했다. 장 의원은 “정부의 R&D 규모는 턱없이 작고, 편성 방식마저 지나치게 경직돼 있다”며 “글로벌 전장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정부의 배터리 강화 방안과 로드맵은 여전히 안이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보다 훨씬 더 공격적인 투자와 유연한 체계 전환 없이는 중국과의 격차를 좁힐 수 없다”며 배터리 산업 정책 전반의 전면 재점검을 강력히 촉구했다.

장 의원의 지적대로, 지원군이 되어야 할 정부 R&D는 고질적인 ‘시장과의 시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2023년 정부는 ‘시급하다’며 전기차용 LFP 양산 목표를 2025년으로 내걸었지만, R&D 예산은 삭감됐고 과제 기간은 그대로 방치됐다. 결국 목표 시점은 미달로 끝났다.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나트륨 배터리는 더 암담하다. 정부가 설정한 에너지밀도 목표(160Wh/kg)는 CATL이 이미 2021년에 공개한 1세대 수준에 불과한 데다, 전체 나트륨 국비 예산의 60% 이상이 2029~2030년에 배정되어 있다.

중국이 올해 대량생산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한 판국에, 몇 년 뒤에나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것은 시장 진입을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소리와 다름없다.

이러한 정책 난맥상의 이면에는 기획부터 예산 투입까지 최소 2~3년이 걸리는 경직된 ‘프로젝트형 R&D’ 관행이 도사리고 있다. 시장이 요동쳐도 과제 내용을 바꾸거나 새로운 수요를 즉각 반영할 수 없는 관료적 행정이 발목을 잡는다.

반도체가 과제들을 유연한 프로그램형 사업으로 묶어 속도전을 펼치는 동안, 배터리는 예타와 부처 간 협의 문턱에서 매번 좌절됐다.

이에 대해 배터리 제조업계와 연구 현장에서도 깊은 한숨이 터져 나온다.

국내 배터리 셀 업체 관계자는 “글로벌 OEM들은 이미 LFP를 넘어 차세대 저가 배터리 라인업을 요구하고 있는데, 국내 공급망과 정부 R&D는 여전히 과거 기준에 묶여 있다”며 “시장이 분초를 다투며 바뀌는데 정부 과제는 한 번 정해지면 목표나 기간 변경조차 불가능해 현실과 괴리된 보고서용 R&D로 전락하기 십상”이라고 토로했다.

이차전지 소재 업체 고위 관계자 역시 “정부는 기업의 의지를 탓하기 전에 현장의 절박함을 봐야 한다”며 “CATL 한 곳보다 못한 3사 R&D 합계와 붕괴 직전인 소부장 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할 때, 찔끔 예산과 몇 년 뒤에나 집행되는 늑장 집행으로는 중국의 원가·물량 공세를 절대로 버텨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터리는 단순한 제조업 품목이 아니라 국가 경제안보와 직결된 핵심 전략 자산이다. 과거 삼원계 배터리로 일궈낸 성공 신화에 취해 시장의 지각변동을 간과한 대가는 이미 뼈아프게 치르고 있다.

“공격적인 대책과 전면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장 의원의 질타처럼, 정부는 이제라도 ‘하이니켈 올인’의 잔상을 완전히 걷어내야 한다.

관료적 형식주의에 갇힌 R&D 집행 체계를 뜯어고쳐, 현장 수요와 시장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예산 배분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시장과의 시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R&D는 더 이상 지원이 아닌 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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