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운항하는 배, 사고 책임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정이든 청년기자 기자 발행일 2026-10-28 07:27:09 댓글 0
- IMO 자율운항선박 안전규칙 7월 적용…선장의 총괄 책임 유지
- 원격운항·시스템 결함 얽힌 배상 문제는 별도 판단 필요
[데일리환경=정이든 기자] 인공지능이 항로를 계산하고 육상의 운항센터가 바다 위 선박을 지켜보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람이 직접 조타하지 않는 배가 다른 선박과 충돌한다면 책임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선장과 선주, 원격운항자, 시스템 개발자 사이에서 안전과 책임의 경계를 정하는 일이 자율운항 기술의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 자율운항선박 국제안전규칙을 채택한 IMO 제111차 해사안전위원회 관련 사진. 회의는 2026년 5월 13일부터 22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출처=국제해사기구 IMO)

국제해사기구(IMO)는 지난 5월 해사안전위원회에서 자율운항선박 국제안전규칙인 ‘MASS Code’를 채택했다. 이 규칙은 7월 1일부터 비강제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다. 자율운항·원격운항 화물선이 기존 선박과 동등한 수준의 안전과 보안, 환경보호 성능을 갖추도록 설계와 운항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자율운항선박이라고 모두 선원 없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선원이 승선한 상태에서 일부 기능을 자동화하거나, 육상의 원격운항센터가 선박을 감시하고 제어하는 방식도 포함된다. 핵심은 선박의 어떤 기능을 사람이 수행하고, 어떤 기능을 원격운항자나 자율시스템이 맡는지 구체적으로 구분하는 데 있다. 


새 규칙이 강조하는 원칙은 인간의 감독이다. IMO는 선장이 선박에 타고 있지 않더라도 선박에 대한 총괄 책임을 유지한다고 설명한다. 원격운항센터 역시 안전관리체계 아래에서 평가·인증되고 운영돼야 한다. 조타실의 위치가 바다에서 육상으로 옮겨가더라도 안전을 관리할 사람과 조직의 역할은 남는다는 뜻이다.

다만 선장의 운항상 총괄 책임과 사고 이후의 손해배상 책임은 구분해서 살펴야 한다. 사고가 났다는 이유만으로 선장이나 개발자 한쪽에 모든 책임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선박 운항을 둘러싼 배상·보험 문제는 기존 국제협약과 각국 법률의 적용을 받으며, 자율운항에서도 이러한 제도와 새로운 운항방식을 연결하는 검토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원격운항자의 대응 지연과 센서 고장, 소프트웨어 오류가 함께 작용했다면 각각의 원인과 관리 의무를 나눠 살펴야 한다. 이는 자율운항 사고를 이해하기 위한 가정으로, 실제 책임은 구체적인 사고 사실과 적용 법률에 따라 달라진다. ‘AI가 판단했다’는 설명만으로 사고 원인과 책임 주체가 충분히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안전기준도 정상적인 항해 성능에만 머물지 않는다. 새 규칙은 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바람과 파도, 시야, 수심 등의 조건을 정하고, 그 한계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설명하도록 한다. 통신 연결과 원격운항, 사이버보안, 화재안전과 수색·구조 역시 주요 검토 대상이다. 

국내에서도 기술과 해양법의 관계는 꾸준히 논의돼 왔다. 해양수산부가 2021년 개최한 제9회 글로벌 오션 레짐 콘퍼런스는 ‘기술혁신과 해양법의 역할’을 주제로 인공지능과 자율운항선박 등 첨단기술에 따른 해양법의 발전 방향을 다뤘다. 당시 제기된 질문은 이제 국제적인 안전규칙을 실제 선박 운항에 적용하는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MASS Code는 의무적인 국제규칙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다. IMO는 적용 경험을 축적한 뒤 강제규칙을 개발하고, 2030년까지 채택해 2032년 발효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향후 추진 일정이며, 이미 모든 자율운항선박에 강제규칙이 시행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율운항 시대의 질문은 배를 얼마나 스스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느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위험한 순간에 누가 개입하고, 사고 뒤에는 어떤 근거로 책임과 배상을 판단할 것인가. 바다 위 기술의 신뢰는 그 답을 분명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쌓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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