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맏형 누구? 전경련·대한상의 [비교분석]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16-03-11 15:28:36 댓글 0
경제5단체 중 가장 역사 오래된 대한상공회의소..굴지 대기업에 한해 가입자격, 전국경제인연합회
▲ 전경련은 가입·탈퇴에 강제성은 없으나 일반 경제단체와 대기업에 한하여 가입할 자격이 있다.

대한민국 기업을 대변하고 공통의 역할이 있음에도 두 단체 간 성격이나 역할 차이가 분명한 경제단체에 ‘양대산맥’ 대한상의와 전경련. 성격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른 이 두 단체의 수장인 허창수 회장과 박용만 회장은 국내 경제계에 얼마만큼의 경제능력을 보여주고 있을까.


경제 대표단체 어디?


경제5단체. 즉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는 각각 성격이나 역할 차이가 분명하다. 그 중 전경련과 대한상의는 재계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며 서로 대한민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불리기를 원하기도 한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방의 특정 시·군에 설립된 각 지방상공회의소를 정회원으로, 주요 업종별 단체나 주요 상공업체를 특별회원으로 하여, 지역과 업종을 망라한 종합경제단체의 성격을 가진다. 대한상의는 기업 규모와 업종을 불문한 전 업종의 대중소기업 모두를 회원으로 하는 종합 경제단체다.


시작은 1884년(고종 21) 한성상업회의소를 설립하고 1895년 11월 상무회의 소규례를 제정하면서부터다. 이후 1946년 5월 조선상공회의소를 창립한 뒤, 1948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로 명칭을 바꾸었다. 1953년 10월 대한상공회의소 및 24개 지방상공회의소가 공법인으로 인가받았다.


1954년부터 38개 지방상공회의소가 신설되었고, 초대 이중재 경성전기 회장을 시작으로 두산 박두병, 쌍용 김성곤, 삼양 김상하, 두산 박용성, CJ 손경식 회장 등이 재임했다. 2013년 기준 71개의 지방상공회의소가 있고, 그 회원수가 14만에 이른다. 13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단체이자, 법적단체다.


이에 비해 전경련은 1961년에야 결성된 민간 경제단체로, 사단법인의 지위를 갖고 있다.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단체가 아니므로 가입·탈퇴에 강제성은 없으나 일반 경제단체와 대기업에 한하여 가입할 자격이 있다. 초대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SK 최종현, 대우 김우중 회장 등이 이끌었다. 창립 당시 13명이던 회원은 현재 업종별 단체 67개와 대기업 437개사로 구성돼 있다.


역사와 규모별로 차이가 있는 이 두 단체는 곧 잘 비교 대상이 됐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경제5단체 중 하나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리더십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박 회장은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5남으로 경기고, 서울대학교, 보스턴대학교 MBA를 졸업했다. 1982년 두산건설 사원으로 입사해 두산음료, 동양맥주, 두산건설 등을 거쳐 1990년대 중반부터 임원 대열에 들어섰다.


박 회장은 1990년대 IMF 경제위기 직전 강력한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며 경영능력을 인정 받아왔다. 소비재 중심이던 두산그룹을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2005년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통해 두산의 사업 방향을 전환시키며 글로벌 ISB(인프라지원사업) 기업으로 변화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OB맥주 부사장, 두산 대표이사 사장, 두산중공업 부회장, 두산건설 회장,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 등을 거친 그는 지난 2012년 3월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렇듯 재계에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는 박 회장은 대한상의 회장으로써 경제민주화에 앞장서며 박근혜 정부와 함께 재계를 이끌고 있다. 특히 박 회장은 지난 2009년부터 서울상의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더불어 두산그룹은 대한상의와 인연이 깊은 기업으로도 알려진다. 두산그룹은 故 박두병 초대회장, 전문경영인 정수창 전 회장, 박용성 전 회장에 이어 현재 박용만 회장까지 총 4명의 상의 회장을 배출했다.


전경련 허창수 회장


경제단체 중 대한상의와 ‘양대산맥’인 전국경제인연합회 허창수 회장. 지난 2011년 2월 제33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선임된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명문가 출신의 ‘재계 신사’로 통한다. 구인회 LG 창업회장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고(故)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는 학력과 외모, 능력, 인맥 등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경남 진주 태생인 허 회장은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세인트루이스대에서 MBA 학위를 받은 뒤 1977년 LG그룹 기조실로 입사해 LG상사, LG화학, LG산전, LG전선 등 계열분리 전 LG그룹 내 계열사들을 두루 거치며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았다.


허 회장은 1995년 구자경 명예회장의 퇴임에 맞춰 구-허씨 양가의 창업세대 경영진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남에 따라 허준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LG전선 회장으로 선임됐으며 2004년 GS그룹이 LG그룹에서 분할되면서 GS그룹이 탄생하자 허씨 가문 내부의 합의를 거쳐 GS그룹의 대표 자리를 맡아왔다. 허 회장은 LG상사 재직시절 홍콩과 도쿄 지사 등에서 근무한 경력 등으로 인해 영어, 일어 등 외국에도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온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연임하기에 앞서 전경련 회장직을 고사하기도 했었지만 결국 딱히 마땅한 후보가 없었고, 결국 연임을 수락한 바 있다. 허 회장은 대내외 경제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등 경제계의 구심점으로서 역할을 해 왔다.


점잖은 신사와 소통의 달인


언급한 것과 같이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성격은 다르다. 허 회장은 다소 소탈한 면을 갖고 있어 무엇보다 ‘재계의 신사’로 불릴 만큼 점잖은 스타일이다. 특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는 뒷전에서 묵묵히 일을 챙기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재계에선 ‘은둔 경영자’로 알려져 왔던 허 회장은 대중에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는 LG그룹 안에서 구본무 회장의 2인자로서 활동해 왔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는데 허 회장은 GS그룹이 분리되어 나오기 전까지 구본무 회장의 뒤에서 묵묵히 일을 수행하는 인물로 비춰져 왔다.


허 회장과는 달리 박 회장은 ‘소통’을 강조하는 등 활동적이고 대중적인 면이 높다. 특히 재계의 타 총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이가 적고 최근 SNS를 적극 활용하는 등 ‘소통 경영’에도 두드러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박 회장의 트위터 팔로워는 무려 16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SNS를 통해 틈틈이 글을 남기는 등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만큼 박 회장이 재계에서 ‘차세대 리더’로 인정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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