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란의 문화 칼럼] 문화는 번역되었을 때보다 이해되었을 때 가까워진다

김미란 칼럼니스트 기자 발행일 2026-11-03 07:14:20 댓글 0
한중 통역과 관광 해설 사이에서 생각하는 문화 전달자의 역할
▲ 김미란 | 관광칼럼니스트·한중 통역사

같은 말을 듣고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장면을 떠올린다. 말 속에는 사전적 의미만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말투가 공손한지, 어느 정도의 침묵이 자연스러운지, 거절을 얼마나 직접적으로 표현하는지에도 각자의 경험과 관계가 스며 있다. 다른 문화를 만나는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단어를 아는 능력과 함께 그 말이 놓인 상황을 살피는 태도다.

필자는 한중 통역사이자 관광 현장에서 손님을 만나는 사람으로 일한다. 회의에서는 발언자의 뜻을 다른 언어로 정확히 전달해야 하고, 관광 현장에서는 여행자가 낯선 장소를 자기 경험과 연결해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두 일의 목적과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만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름을 알려주는 일에서 의미를 설명하는 일로

한국의 궁궐이나 골목, 전통문화를 소개할 때 고유명사를 외국어로 옮기는 것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이름을 알아들었다고 그 장소가 곧바로 친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이 어떤 생활과 관계 속에서 쓰였는지, 지금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찾는지까지 연결해야 설명은 여행자의 기억 속에 자리를 잡는다.

문화 해설은 지식을 많이 나열하는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손님이 이미 아는 것과 아직 모르는 것을 살피고, 핵심을 골라 설명한 뒤 질문할 여지를 남겨야 한다. 같은 한국어 설명을 외국어로 길게 바꾸는 것만으로는 이 간격이 메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이해를 돕겠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문화를 무리하게 같은 것으로 설명해서도 안 된다. 중국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는 비교는 대화의 입구가 될 수 있지만,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함께 밝혀야 한다. 쉽게 설명하는 일과 차이를 지워버리는 일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을 한 나라의 대표로 만들지 않기

문화 차이를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인은 이렇다”, “중국인은 저렇다”는 문장을 쉽게 쓰게 된다. 그러나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세대와 지역, 직업과 개인의 경험에 따라 생각은 다르다. 국가에 관한 설명이 눈앞의 사람을 단정하는 기준이 되면, 문화 이해를 위한 말이 오히려 편견을 만들 수 있다.

필자는 문화 전달자가 이러한 단정에 특히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다면 국적만으로 해석하기보다 그 사람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설명을 준비하는 능력만큼 설명을 바꿀 수 있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이 원칙은 관광 해설뿐 아니라 기업 간 교류와 문화 행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회의 통역에서는 발언자의 뜻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지켜야 한다. 문화적 배경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면 통역자의 생각을 발언자의 말에 몰래 섞기보다, 설명이 필요한 지점을 알리고 당사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교류의 성과는 이해의 깊이에서도 찾아야 한다

국제 문화교류를 준비할 때 행사 횟수와 참가 규모는 눈에 잘 들어온다. 그와 함께 살펴야 할 것은 참가자가 무엇을 새롭게 이해했고, 어떤 질문을 남겼는가다. 안내 자료를 읽기 쉽게 만들고, 현장에서 질문을 받아주고, 설명의 정확성을 점검하는 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교류의 토대를 만든다.

여행사와 문화기관도 통역과 해설을 단순히 외국어 문장을 제공하는 비용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한다. 전달하는 내용의 맥락을 함께 정리하고, 고유명사와 설명을 일관되게 관리하며, 현장에서 반복된 질문을 다음 자료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문화는 멀리서 바라볼 때 하나의 이미지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만나고 질문을 나누면 그 안에 여러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 필요한 다리 역시 상대를 한마디로 규정하는 말보다, 서로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려는 대화 속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 본 칼럼 내용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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