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 상) 철원 DMZ 평화생태철새 겨울여행 프로그램 시작점인 생창리 방문자 센터, (우 상) 지뢰 표지, (좌 하) 유엔군사 정전위원회의 비무장지대 접근 경고문 (우 하) 멀리 남방한계선 표지가 보이고 앞으로 두루미 가족이 보인다.이 프로그램의 입구이자 시작점인 생창리 DMZ 평화생태공원 방문자 센터가 위치한 생창리는 전쟁으로 인해 사라진 김화군의 일부로 1970년 100세대가 입주해 재건한 마을이다. 김화군은 서울에서 포천철원을 거처 금강산가는 길목으로 겸재 정선의 그림으로 이름을 남긴 피금정(披襟)이 있던 곳으로 당시 서울보다 더 번화한 곳이었다고 전해진다.방문자 센터를 출발해 용양보 탐방을 위해서는 3사단이 관리하는 민통선 초소를 지나야 하는데 멀리 보이는 산들에 철책이 지나는 길이 이곳이 최전방임을 환기 시켜준다. 잠시 낮선 환경에 적응하는 사이 암정교에 도착하게 된다.▲ 유엔군사 정전위원회의 비무장지대 접근 경고문이 달린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통과해 최전선 철책을 지키는 초소가 있는 용양보 통문에서 용양늪지를 촬영한 전경이어 유엔군사 정전위원회의 비무장지대 접근 경고문이 달린 남방한계선 철책선을 통과해 용양보를 지나 용양보 통문까지 다가가면 감탄과 현실에 직시가 교차한다. 이곳이 바로 휴전선을 지키는 최전방 초소가 있는 곳이다. 민간인이 절대로 올 수 없던 곳. 군인들이 최전방 철책근무를 서던 곳을 잠시나마 눈으로 볼 수 있음은 역사의 한 페이지에서 점하나 찍는 감동을 주는 장소다.▲ 용양보는 일제 강점기 건설되었던 금강산 전철 교각을 사용해 건설될보로 예 철교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과거에는 철도와 교통의 중심역할을 하는 지역이었고 이곳에서 평강, 원산, 내금강으로 연결되며 시베리아 철도 TSR의 중심지가 철원이다. 이제 그 옛 모습을 볼 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램으로 발길을 돌렸다.우리나라 도로 중 북한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1357번 국도와 자유로, 호국로, 통일로, 평화로 등이다. 조선시대 금강산을 가려면 서울에서 포천과 철원을 거쳐 김화를 지나야 했다. 일제 침탈기인 1931년 완공된 금강산전기철도는 창도지역 유화철을 반출할 목적으로 철원역에서 김화역을 거쳐 내금강까지 28개역 총 116km의 철로를 놓아 매일 8회 운행했으며 금강산까지 4시간 30분가량 걸렸다고 한다.▲ 철원 평화전망대 전경이후 평화전망대에 올라 멀리 궁예의 도성터가 있는 옛 태봉국을 바라봤다. 궁예의 관심법이 조금 더 현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북쪽으로는 사진촬영이 금지돼 너무나도 아쉬웠다. 멀리 보이는 평야지대와 산하가 너무나도 화창한 당일 날씨로 선명하게 보여 눈과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았다. 다음에 이 자리에 오게 되면 오늘처럼 바라만 보지 않기를 소망해 봤다.▲ 동송저수지에서 물놀이와 휴식을 취하는 두루미 모습겨울 철원지역에는 두루미(멸종위기Ⅰ급, 천연기념물 제202호), 재두루미(멸종위기Ⅱ급, 천연기념물 제203호)를 비롯해 큰고니(천연기념물 제201-2호), 독수리(멸종위기Ⅱ급, 천연기념물 제243호), 쇠기러기 등이 머물다 가는 장소다.▲ 수학여행 때 다녀왔던 곳이라 오랜 시간을 돌아 바라보는 노동당사는 왠지 낯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에서 평화를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마지막으로 노동당사를 들렸다. 수학여행 때 다녀왔던 곳이라 오랜 시간을 돌아 바라보는 노동당사는 왠지 낯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발해를 꿈꾸며’에서 평화를 노래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이전에 왔을 때는 비포장도로에 논밭이던 모습이 지금은 아스팔트 도로에 잘 정리된 주변이 생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