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작으로 도매가격이 반년 만에 반토막 났지만, 정부가 11월 3일 내놓은 ’2026년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은 역대 최대 640억원을 소비자 할인에 쏟아붓는 데 집중돼 있다.
생산비도 못 건지는 농가를 위한 시장격리·매입단가 보장 대책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작년 ’金배추’가 올해 ’잉여 배추’가 된 이유
배추값이 요동치는 건 올해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가을배추 가격이 평년의 두 배 가까이 치솟으면서 ’금배추’라는 말이 유행했다.
가격이 좋았던 기억은 농가의 재배 결정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전망에 따르면 올해 가을배추 생산량은 121만4000톤으로 지난해보다 18.5% 늘었고, 가을무도 37만2000톤으로 11.1% 늘었다. 때마침 태풍 피해도 없어 작황까지 좋았다.
반면 수요는 거꾸로 갔다. 1인 가구 증가와 포장김치 소비 확산으로 김장 직접 담그기 비율은 58.6%로 지난해(64.2%)보다 5.6%포인트 떨어졌고, 김장배추 수요량은 58만3000톤으로 지난해(64만2000톤)보다 9.1%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공급은 늘고 수요는 줄어드는 ’교차’가 겹치면서, 서울 가락시장의 배추 10㎏당 평균 도매가격은 11월 4일 4792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평균(1만1353원)보다 57.8%, 평년 11월 평균(8315원)보다 42.4% 낮은 수준이다. 10월 28일에는 4338원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640억원 할인 대책…그러나 산지 반응은 “반쪽짜리”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는 11월 3일 합동으로 ’2026년 김장재료 수급안정대책’을 발표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올해는 전반적으로 김장채소 공급은 충분한 반면, 애쓰신 농업인들은 상대적으로 가격 하락에 따른 어려움이 염려된다”며 “’한 포기 더 담그고 나누기’에 동참해 어려운 농가와 이웃 사랑을 실천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책의 핵심은 할인이다. 대형·중소형마트에서는 10월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김장재료와 수육용 돼지고기 등을 최대 40%까지 할인(예산 440억원)하고, 전통시장 등에서 쓰는 농할상품권 200억원어치를 20% 할인 판매한다.
수산물도 ‘대한민국 수산대전 김장 특별전’(10월 28일~11월 29일)을 통해 천일염·새우젓·멸치액젓·굴 등을 최대 50% 할인한다.
총 할인 예산 640억원은 지난해(500억원)보다 28% 늘었다. 가격이 떨어진 오이·애호박·토마토·파프리카·샤인머스캣도 할인 대상에 추가했고, 지방자치단체·농협과 함께 김치 담그기·나눔 행사, 공공기관·기업의 단체 구매 캠페인도 벌인다.
수급 불안에 대비한 사전 비축 물량은 배추 4만6500톤, 무 9000톤이다.
그러나 산지의 반응은 차갑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대책 발표를 하루 앞둔 11월 2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검토 중인 수매·비축과 수출 지원은 배추에 집중돼 있고, 쪽파와 무 등 다른 김장채소 대책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농민에게 생산비도 못 받는 가격으로 농산물을 내놓으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전농은 배추 1500㏊에 대한 선제적 시장격리와 품목별 공공수매, 농가 손실 보전을 요구했다. 11월 5일에는 충북 청주 미원면의 한 농가가 약 2000㎡ 규모의 배추밭을 트랙터로 갈아엎었고, 해남에서도 산지 유통상인들이 밭떼기 거래를 포기하거나 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농가가 판로를 찾지 못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고 한국일보가 11월 6일 보도했다.
해남군농민회 백형진 정책위원장은 “작년만 해도 ‘금배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은 피땀 흘려 키운 배추를 밭에 통째로 갈아엎게 생겼다”는 한 농민의 발언을 전하며 정부가 땜질식 대책 대신 즉각적인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농업 전문지 농업인신문도 11월 사설에서 “배추·무값 폭락하는데 할인에 440억원 쏟아붓나”라는 제목으로 이 대책을 정면 비판했다.
사설은 “소비자 장바구니 물가에는 많은 예산을 쓰면서 생산농가의 생존 보호에는 소극적”이라고 지적하며, 이미 떨어진 가격에서 할인 판매를 늘리는 것이 농가의 실제 수취가격 개선으로 이어질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산지에서는 시장격리 물량을 최소 9만톤으로 늘리고 배추 10㎏당 7000~8000원의 적정 매입단가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도 전했다.
반복되는 ‘비축과 할인’…방향만 바뀐 똑같은 처방
데일리환경이 이달 초 보도에서 짚었듯, 농식품부의 수급 대응 공식은 가격이 오를 때나 내릴 때나 거의 똑같다. 가격이 오르면 비축분을 풀어 공급을 늘리고 할인을 지원하며, 가격이 내리면 소비촉진 할인과 소규모 수매·비축으로 대응한다. 정작 가격 급등락의 근본 원인인 ’재배면적의 자유방임’은 손대지 못한 채, 매번 사후 처방만 반복되는 구조다.
문제는 이 패턴이 수년째 똑같다는 점이다. 작년 가격이 치솟았을 때도, 올해 가격이 폭락한 지금도 정부가 내놓는 해법의 뼈대는 ’비축 물량 조절+소비자 할인’이다. 계약재배 비율을 끌어올려 생산자 스스로 출하 시기와 물량을 조절하게 만들겠다는 구상은 매년 대책문에 등장하지만, 실제 계약재배 면적이 획기적으로 늘었다는 통계는 이번 발표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농식품부 관계자도 “배추 재배면적은 줄었지만 날씨가 좋아 생산량이 늘었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한 생산 구조 개편도 추진 중이지만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는데, 이는 역으로 수년간 추진해온 생산구조 개편이 아직 가격 등락을 완충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할인 지원과 농가 소득 보전 사이의 ’연결고리 부재’다. 소비자가 마트에서 40% 싸게 사더라도, 그 할인분이 유통 마진에서 흡수될지 산지 매입가격 인상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설계가 이번 대책에는 뚜렷하게 담겨 있지 않다.
전농과 농업인신문이 공통으로 지적하듯, 할인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소비는 늘고 농가는 여전히 손해’라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과거에도 할인 행사의 소비 진작 효과가 산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아 추가 수매를 요구받은 사례가 반복됐다.
남은 과제…시장격리 확대와 ‘사전’ 수급조절 시스템
정부는 “공급 과잉이 계속되면 산지 일시 출하 정지 등 추가 대책을 시행하겠다”며 여지를 남겼고, 밭을 포기하는 농가를 위해 산지폐기 지원 단가도 운영비와 생산비 전액보전 사이의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농이 요구한 9만톤 규모의 시장격리나 최소 매입단가 보장 같은 ‘산지 중심’ 대책은 아직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앞으로 지켜봐야 할 지점은 분명하다.
첫째, 11월 중순 이후 실제 비축·시장격리 물량이 전농 요구 수준으로 확대되는지, 둘째, 할인 예산이 실제 산지 수취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지에 대한 사후 검증 자료가 공개되는지, 셋째, 해마다 되풀이되는 ‘풍작→폭락→갈아엎기’ 또는 ‘흉작→폭등→금배추’ 악순환을 끊을 사전적 수급조절 시스템―예컨대 재배면적 신고제나 공공수매 상설화―이 이번 겨울을 넘어 실질적으로 추진되는지다.
이 세 가지가 확인되지 않는 한, 640억원이라는 숫자는 소비자 체감 물가를 낮추는 데는 효과가 있어도 농가의 ’지속 가능한 영농’을 지키는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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