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이를 말해 준다. 제주지방기상청은 지난 6일 한라산 단풍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평년보다 9일 늦다. 산 전체의 80%가 물들었을 때를 절정으로 보는 기상청 기준에서, 1991년 이후 가장 이른 절정은 10월 14일이었고 가장 늦은 해는 11월 21일까지 밀렸다. 같은 산의 같은 현상이 한 달 넘게 들쭉날쭉한 것이다.
올해는 예고된 지각이었다. 민간 기상업체 웨더아이는 9월 중순, 9~10월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보고 팔공산 단풍 절정을 평년보다 15일 늦은 11월 12일로 내다봤다. 낙엽수는 하루 최저기온이 5도 아래로 내려가야 본격적으로 물이 든다. 가을이 덥다는 것은 곧 단풍이 늦다는 뜻이다. 산림청 역시 올해 단풍 절정이 최근 5년 평균보다 0.8일 늦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하루가 채 안 되는 차이처럼 보이지만, 이미 늦어진 기준선 위에 다시 쌓이는 지연이다.
여름도 순탄하지 않았다. 웨더아이에 따르면 올해 8월 전국 평균 강수량은 235.9㎜로 평년의 86% 수준에 그쳤다. 덥고 마른 여름을 지나 더운 가을을 맞은 나무들에게 단풍은 서둘러 올 이유가 없었다. 계절이 늦게 바뀐다는 것은 여름이 그만큼 길어졌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가을은 짧아지고, 그 짧은 가을마저 뒤로 밀린다.
달력이 밀리면 사람의 일정도 흔들린다. 단풍철에 맞춰 축제를 여는 지자체도, 그 시기에 맞춰 손님을 받는 산 아래 마을도, 주말 하루를 비워 산을 찾는 시민도 해마다 날짜를 다시 맞춰야 한다. "작년 이맘때"라는 말이 더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경험으로 쌓아 온 계절 감각이 데이터 앞에서 조금씩 무력해지고 있다.
단풍이 며칠 늦는 게 무슨 대수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단풍은 나무가 겨울을 준비하는 생리 반응이다. 그 시계가 밀린다는 건 숲 전체의 리듬이 흔들린다는 신호다. 산림청이 단풍 예측지도를 만들며 "기후변화에 따른 산림 변화를 기록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래서다. 단풍은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쉽게 체감하는 기후 지표다.
여기서 사진의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상청은 21개 주요 산을 관측한다. 하지만 동네 공원의 은행나무, 출퇴근길 가로수, 주말에 찾는 강가의 산은 공식 관측망 밖에 있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매년 같은 자리에서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이다. 촬영 날짜와 장소가 고스란히 남는 디지털 사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관측 기록이다. 해외에서는 시민이 찍은 사진으로 식물의 계절 변화를 추적하는 시도가 이미 연구의 한 갈래가 됐다.
사진가들은 이제 단풍 '명소'보다 단풍 '시기'를 먼저 검색한다. 예전의 출사 달력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작은 불편이 사실은 가장 정직한 기후 보고서일지 모른다. 우리는 기다리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다만 그 기다림이 해마다 길어진다는 사실만큼은 기록해 두어야 한다.
남아 있는 계절을 찍는다는 것은 곧 사라져 가는 계절을 찍는 일이다. 올가을, 휴대전화 속 단풍 사진 한 장에 날짜를 적어 두자. 10년 뒤 그 사진은 풍경이 아니라 증거가 될 것이다.
전연우 · 영국왕립사진협회(RPS) 회원 사진가. 포토에세이 「남아 있는 것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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