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 땐 B등급, 직후 뚝"...정릉천교 케이블 파단 반복에 '임의 등급 조작' 논란

이정윤 기자 발행일 2026-10-19 07:50:38 댓글 0
국가기준 ‘d등급’인데 자체 ‘C3’ 분류해 방치 의혹...서울시 “전체 구조엔 영향 없어” vs 전문가 “예고된 붕괴 위험”
 국가 세부지침 'd등급' 무시하고 자체 'C3' 적용해 위험 축소 의혹

서울시 "상시 계측 중, 즉각 붕괴 위험 없어"...건설업계 "피로 누적 따른 연쇄 파단 배제 못 해"

[데일리환경=이정윤 기자]  하루 10만 대가 넘는 차량이 질주하는 서울 도심의 핵심 교량 ‘정릉천고가교’가 구조적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교량 상판을 지탱하는 핵심 철강선(텐던·Tendon)이 정기 안전점검 직후 끊어지는 사고가 반복되는 가운데, 서울시가 국가 지침상 ‘중대 결함’을 자체 등급으로 축소 분류하며 2년 넘게 교체를 미뤄온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2024년 텐던 파단 사진

▲연도별 정릉천고가교 텐던 파단·교체 현황(단위:본)

1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황희 의원(서울 양천갑)이 서울시와 국토안전관리원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릉천고가교는 2016년 첫 케이블 파단 이후 2024년 9월과 2026년에 걸쳐 총 세 차례나 강철 케이블이 절단된 채 발견됐다.

텐던은 콘크리트 박스 거더 내부에서 강한 인장력을 발휘해 통행 하중을 버티게 하는 핵심 부재다. 하나라도 파단되면 인접 케이블로 하중이 급격히 전이돼 대형 붕괴 사고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정기점검 땐 '양호(B등급)', 돌아서면 '파단'... 무용지물 된 점검체계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서울시의 점검·진단체계가 이 같은 위험을 사전에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2023년 정밀안전진단(23.5~24.3)과 2025년 정밀안전점검(25.2~26.3)에서 모두 “중대 결함이 없다”며 양호 수준인 ‘B등급’을 매겼다.

그러나 2023년 진단 종료 불과 6개월 뒤(2024년 9월) 텐던 1본이 끊어졌고, 2025년 점검이 끝난 뒤인 2026년에도 또다시 1본이 파단됐다. 정밀 검사를 마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잇따라 케이블이 절단되면서, 서울시의 안전점검이 ‘수박 겉핥기식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가기준 ‘d등급’을 ‘C3’로 둔갑... 25본 교체 2027년으로 지연

위험 축소 및 은폐 의혹도 도마 위에 올랐다. 2024년 파단 직후 실시된 텐던 전수조사(총 300본) 결과, 부식 및 단면 손실이 다수 확인된 텐던이 25본에 달했다.

국토교통부의 「시설물의 안전 및 유지관리 실시 세부지침(교량편)」은 케이블의 손상과 단면 손실을 동반한 부식을 구조안전상 명백한 ‘중대한 결함’이자 ‘d등급’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는 이를 국가기준 대신 자체 임의 기준인 ‘C3 등급’으로 분류했다. 심각한 결함을 단순 보수가 가능한 중간 수준의 손상으로 둔갑시켜 시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고 예산 투입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룬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실제로 전수조사에서 확인된 25본의 고위험 케이블은 현재까지 단 1본도 교체되지 않은 채, 2027년까지 교체 작업이 미뤄져 있다.

서울시 감독관 "상시 모니터링 중, 전면 통제는 비현실적" 해명

이에 대해 현장 관리를 총괄하는 서울시 공사감독관 측은 “안전을 방치하거나 은폐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서울시 한 교량관리 담당 감독관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릉천고가교는 외부텐던 방식으로 설계돼 있어 개별 텐던이 파단되더라도 여유 하중을 분산할 수 있도록 설계된 다중 방어 구조”라며 “센서와 육안 조사를 통해 장력을 실시간 계측하고 있어 통행 차량의 즉각적인 붕괴 위험은 없다”고 해명했다.

등급 분류 논란에 대해서도 “국가 기준의 ‘d’는 교량 전체나 부재 전체의 위험성을 광범위하게 포괄해 즉각 사용제한을 유발할 수 있다”며 “교통량이 일 10만 대에 달하는 내부순환로의 특성상 무조건적인 전면 통제보다는, 손상 경중에 따라 단계별(C1~C3)로 모니터링하며 예산 확보와 교통 대책을 병행해 순차 교체하려는 현장 중심의 관리적 판단이었다”고 덧붙였다.

건설·교량 전문가 "부식 누적된 교량, '도미노 파단' 부를 수 있어" 경고

반면 토목 구조 및 교량 시공 전문 엔지니어들의 시각은 싸늘하다. 구조적 여유도(Redundancy)만 믿고 교체를 미루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건설사 교량 구조 기술사는 “외부텐던 교량에서 1~2본의 결함이 당장 붕괴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은 이론적인 이야기일 뿐, 이미 182본 이상 부식이 진행되고 25본이 d등급 수준이라면 잔여 케이블에 가해지는 피로 하중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고가도로 특성상 과적 차량 통행과 진동 충격이 반복되는데, 부식된 텐던이 임계점을 넘으면 순식간에 도미노처럼 끊어지는 ‘취성 파괴(Brittle Fracture)’가 일어날 수 있다”며 “자체 관리 기준을 내세워 2년 넘게 교체를 미루는 것은 건설 안전 원칙상 납득하기 어려운 행정 편의주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황희 의원 역시 “텐던이 세 차례나 끊어지고도 ‘양호’ 판정을 내리고, 중대손상 케이블 25본을 2년째 방치하는 것은 서울시 안전관리체계의 총체적 실패”라며 “오세훈 서울시장의 안전의식 부재와 예산 투입 지연이 부른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질타했다.

황 의원은 “눈가림용 자체 등급 분류를 즉각 중단하고, 정릉천고가교 텐던 전체를 국가 세부지침에 따라 재평가해 그 결과와 교체 로드맵을 시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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